Saturday, December 28, 2013

링거에 위험성

http://www.heykorean.com/HK_News/view.asp?section=3&aid=97239

http://www.nytimes.com/2013/12/27/nyregion/infection-resulting-in-amputation-raises-questions-about-asian-immigrants-iv-use.html?src=me&_r=0

한국말로 흔히 불리는 '링거'란 단어는 사실 의학에서는 intravenous 라고 불리웁니다. 흔히 I.V 라고 불리우는 이 단어를 사실 두개의 단어가 합쳐진 거인데요, 그 두 단어는 바로

Intra
Venous

즉 위, 장들을 거치지 않고 바로 Vein (정맥)으로 투입된다고 하여서 Intravenous 란 단어를 얻게되었습니다.

한국 방송을 보면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링거 투혼'을 했다는 말들을 흔히들 보는데요, 전체적으로 이건 사회에 안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I.V. therapy 는 사실 입으로 먹는 약들보다는 훨신 흡수력이 좋고 onset 또 빠릅니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성도 높아서 사실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병원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흔하지는 않지만 사지를 짤라야 하는 경우도 충분히 생길수 있으니 여러분 모두 생명이 위급하지않으시면 조금 안전한 길로 가시길 바랍니다 ^^

Sunday, December 22, 2013

눈물샘 - 우는 방법







Lacrimal gland 은 흔히들 사람들이 말하는 눈물샘이다.

눈 맨 끝자락, 귀쪽에 가까운 자리에 위치하여서 이것이 눈물을 만들기 시작하면 눈물은 눈을 가로질러 코쪽으로 향한다.

코위쪽에서 부터 nasolacrimal duct 이란 통로를 따라내려와 사실 눈쪽 보다는 코쪽으로 먼저 향한다.

그렇게 코쪽으로 향한 눈물들은 점점 그 통로를 채우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그 통로에 더 이상에 눈물이 들어갈수 없을때,

한마디로 눈물이 넘치도록 찼을때,

그 때서야 우리 눈에선 눈물이 한방울씩 뚝... 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방울에 눈물에 떨어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눈물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사람들이 눈물을 흘릴 때 주로 콧물을 흘리는 것이다)

Saturday, December 21, 2013

펑펑

어머니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미국 처음왔을 때 미국에 사는 친척때문에 얼떨결에 알게된 지인인데 미국처음왔을때 몇번 만나고 몇년만에 연락이 온것이었다.

몇번 만난적도 없었고, 잘 알지도 못했지만 그 지인이라는 분은 성격이 참 좋으신 분 같았다.

왜 그런 얼굴 있지 않은가?

하두 많은 웃음때문에 얼굴에 웃는 모습을 따라 주름이 진 사람.

그분은 그러신 분이셨다.

항상 웃고 계셨고, 어떤 말에든지 격렬히 동의하셔서 항상 누구에게나 선심을 사시는 그러신 분이셨다.

아마 그분이 더 좋게 보였던 이유는 아마 그분의 성함이 나의 어머니와 성함과 같으셔서 아닐까도 싶다.



전화를 받으신 엄마는 손을 입으로 가져가셨다.

얼굴은 귀신이라도 본듯 얼어붙으셔있으셨다

전화 내용은 이러하였다.

그 분, 즉 우리 어머니와 이름이 같으신 분의 남편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머리숫이 좀 없으셨지만 그래도 나이는 젊디 젊은 40 대였고, 이제막 급 성장하는 12살 아들을 둔 그가 아침운동을 갔다가 뺑소니를 당해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몇년만에 전화를 하셨는데, 별로 좋지 않은 소식을 가지고 전화하셧다. 장례식은 어디서 언제라며 추가 정보를 말해주셨고 엄마는 전화를 끊으시고 '세상에' 라는 말을 반복하시며 방금 받은 전화내용을 내게 말해주셨다.


시간이 흘러 장례식 날이 되었다.

아빠는 일이 있어서 못오셨고 내가 운전하여서 엄마와 나, 이렇게 둘이 장례식에 참석하였다.

그쪽 가족 모두가 예수를 믿는 사람이어서 교회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고 찬양을 불렀다. 그러다가 후반쯤에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시간이 왔다. 관을 시작으로 쭉 길게 줄을 섰고, 흐르는 찬송가에 맞춰서 한명씩 고인에 얼굴을 보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우리 엄마 차례가 되었을 쯤, 어떤 여자가 너무나 큰 울음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세상에나, 미망인이나, 그쪽 가족이나 그렇게 크게 우는 사람이 없었는데, 그 여자는 고인과 무슨 관계였는지 폭포같은 눈물들이 얼굴 화장을 전부다 번지고 있었다.

그렇게 고인에게 인사를 하고, 엄청나게 통곡하면서 우는 그 여자는 미망인과 껴안으면서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죽은 자기 남편을 위해서, 아니면 그 가족 전부를 위해서 울어주는 사람이 있다니,
아마 그건 미망인에겐 엄청나게 큰 위안이 아니였나 싶다.

그렇게 그 여자에 통곡을 계속되었다.

가족도 아닌 그 여자는 계속 울었고,

장례식을 떠날 때쯤이야, 간신이 흘러 넘치는 눈물을 누군가에게 얻은 손수건으로 치우치며 그 곳을 떠나였다.

돌아오는 길도 역시 내가 운전하였다.

엄마는 조수석에 앉아 계셧다.

번진 화장을 고치고 있는 엄마에게 왜 그렇게 크게 오랬동안 울었냐고 물어봤다.

잘 알지도 못하는 가족이고, 하다못해 몇면만에 만난 사람들인데... 왜그렇게 크게 울었어?


그랬더니 엄마는 모른덴다.
그냥 눈물이 자기도 모르게 계속 흘러나왔다고 한다.

엄마는 무엇이 그렇게 슬프셨을까?






그렇게 나의 해서는 안되는 사랑이 시작되었다 - 2

첫번째
http://kaytreetown.blogspot.com/2013/06/blog-post_10.html





그녀와 첫경험을 했다.

머리가 핑돌지만 그곳만은 불끈 솟아 있었고,

뭔가를 나쁜일을 하는거 같았지만 벌써 멈출수 없을 정도에 가속이 붙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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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곳은 참 희한한 곳이다.

친하고 친하던 가족관계도 미국이란 나라에 와서 괜히 쓸떼없이 친해지고 결국엔 싸움이 나서 멀어지는가 하면

듣도 봬지도 못한 사람이 와서 "내가 니 삼촌이다" 라며 어설프지마 새로운 가족관계가 생성되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두개다 아니였다.



나의 경우는 미국이란 낮선 곳에와서 이름도 듣도 못한 사촌과 사랑에 빠져버렸다.


육촌.

"너네가 육촌이야. 옛날같으면은 한 지붕밑에서 살 정도로 친한 가족이야"


그의 아버지에게 이 말을 들었다.

물론 그의 아버지는 그녀와 나 사이를 모르고 계셨다. 물론 알려드리고 싶지도 않았다.

덮지도 않은 날씨에 삐질 삐질 땀이 흘러내렸고,

그는 뭐라도 아는 듯이 쉬지 않고 우리가 가족임을 계속 강조하셨다.







처음부터 알았던 건 아니다.

처음부터 알았던건 아니지만, 처음부터 알았다면 멈출수 있었을까?


















노력파






“Do you like studying? If you like studying, then go into medicine.”


같은 교회를 다니던 당시 의대 4학년이였던 형이 해준 말이다.


공부… 어려서 부터 죽어라 해왔다. 뭐 어디가서 일등이라는 타이틀을 받아본적은 없지만 엄마는 항상 어딜가나 내 자랑하는 맛으로 살 정도의 점수는 유지했다. 머리는 지지리도 무식하지만, 누구보다 먼저 도착하였고 누구보다 오래남아서 공부하였기에 고등학교에서 부터 “노력파” 란 별명을 가졌고, 그때에는 그게 만약 웃기고 재미있었지만 지금으로써는 그 점이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몇일전 같이 의대를 다니는 친구가 나에게 이런말을 했다.

그는 내가 가지고 있는 talent 가 부럽다고 하였다. Talent?

Talent 라면...지능적인 우월함? 아니면 동물적인 운동신경? 그것도 아니면 존재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능력?



이런게 모두 아니였다.


그가 나에게 부러워하던 talent 는 나의 hardworking 하는 characteristic 이라고 한다.


웃었다.


같이 막 웃다보니깐






‘욕같다’ 라는 생각이 든다.


이놈의 자슥.


잊는게 두려울 뿐이다.

신기하다

잊을거 같던 그녀가 점점 잊혀져간다.

매번 따라했던 그녀의 말투도 점점 어색해지고

가끔씩 SNS에서 보이는 그녀의 웃는 얼굴도 어느 날부터인가 어색해진다.

이런식으로 사람을 잊어가는 거겠지요?

이런 식으로  지난 시간 해왔던 사랑도, 추억도, 실수도, 행복도, 모두다 잊혀지는 거겠지요?

오늘은 왠지 잊고 싶었던 그녀를 기억하고싶다.

그때는 그렇게 싫어하고 부딛히고 싸웠는데 지금은 그랬던 것마져 나도 모르게 잡고 싶어진다

그녀를 이상 사랑하진 않는다.

이기적인것인가…?

그냥 그녀를 잊는게 두려울 뿐이다.


어느새 나는 너가 되었다.

여자친구와 손을 잡고 걸어 다닌다.


좋은 야경을 구경하기도 하고 재밌는 이야기를 할때에는 서로 손을 잡은채 까르르르 웃기도 한다.


집에 바래주면서 마지막 굿나잇 키스를 전해주고 자기 전에는 서로 통화를 하면서 다음에는 어디를 가자며 미래를 기약한다.


그렇게 ... 다시 행복을 찾았다.





사랑은 사랑으로 치료된다고 흔히들 말한다. 사랑으로 아파한다면 그것을 묻고 덮고 극복하는 최고의 방법은 바로 위에 새로운 사랑은 올려놓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확실하지가 않아서 이다.


어렸을때 아무것도 모르며 바라만 봐도 좋아하는 '첫사랑' 고등학교 시절에 격었다. 바라만 봐도 좋아해서 그런지, 고백한번 못해보고 바라만 보다 졸업하고 말았다. 사실 풋사랑이어서 그런지 아련하기는 하지만 아프진않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또다른 '첫사랑' 만난다. 이번에는 바라만 보는 사랑이 아닌, 서로 눈을 마주보고 손을 잡고 사랑을 하는 그런 사랑.


1년반을 만나면서 이런 느낌들 처음 느껴보았다. 모든걸 주고도 모자라다는 느낌, 너무 사랑해서 가슴이 터질것 같다는 느낌.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보호해준다는 느낌. 내가 하던 바라만 보던 사랑이 귀엽게마져 보이게 만들었다

그녀는 나에게 '진짜' 첫사랑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녀에게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니였다.

그녀는 나를 만나기 전에 3년이란 시간을 만나왔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였다. 그래서였나... 그녀는 항상 나에게 간격을 두고 있는거 같았다. 나를 찾고 사랑을 나누고 미래를 나누기를 원했지만 왠지 모든것들을 한발짝 뒤에서 하는 느낌이랄까?


이해가 안간다고?


한가지 예를 들자면 연애초기에 나와 싸우면 그녀는 항상 자기 전남친에게 연락을 하곤 하였다. 핸드폰 기록들... 지울수도 있는데도 지우지 않고 실수처럼 나에게 보여주곤 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화해하고 사랑을 나눌때면 "미래에는 어느 집에서 살자", "강아지는 몇마리를 두자" 는둥 미래를 약속하고는 했다.


그래서 나의 사랑은 강렬했다. 그녀가 멀어지려고 하면 붙잡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20% 사랑을 해준다면 80% 사랑해주면 되는거 인줄 알았다.


웃기다...


그녀는 생리기간만 되면 성격이 심각하게 민감해 지고는 했다. 마치 영화에서 교수가 화가나면 헐크가 되듯 그녀는 생리하는 기간만 되면 나에게 울면서 외롭다면서 헤어지자고 했다.


매달 처음 6개월동안 그래왔다. 그녀가 생리기간만 되면 만나기만 하면 작은 것들로 싸움을 붙이곤 했다. 그래서 싸우는게 무서워서 집에서 쉬라고 하면 나에게 헤어지자고 하고선 그녀는 전남친에게 연락을 하곤 했다.


진심으로 고맙게도 전남친은 전화를 한번도 받이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1년반을 참아왔는지... 내가 기특하다고 느낄정도이다.


지금 새로운 여자를 만난다. 나보다 한살어린 연하.


그녀는 나에게 두번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왔지만 나는 그녀에게 첫사랑이라는 이름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애교가 많다. 버스에서 내려서 나를 마주치게 되면 그녀는 아이처럼 달려와서 뽀뽀를 남발하고 나를 쎄게 껴안는다. 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안에서는 나에게 안겨서 "너무 좋다 자기" 말만 열번도 넘게 하는거 같다.


물론 나도 모든 것들에 보답을 해준다. 사랑한다는 말에 사랑한다고 해주고, 좋다는 말에 나도 너무 행복하다는 것을 표현해준다.

전 여친과 갔었던 곳을 가고, 먹었던 음식들을 먹고, 그리고 기약했던 미래들을 또 한번 그리고 있다. 

하지만 첫번째가 아닌 두번째 사랑, 자꾸만 첫번째 사랑을 반복하는 복사기 같아서 뭔가가 꺼림칙하다.

나도 모르게 한발짝 뒤에 서있는 느낌이랄까...?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나는 너가 되버리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