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rch 31, 2014

착각

할수 있었던 거랑
직접 해낸거랑은 천지차이야,

착각좀 하지마 짜냐

Sunday, March 30, 2014

동생에게 심히 쫄았던 썰...

어렷을 때부터 동생과 나는 매우 다른 길을 걸었다.

우선 내가 5학년때 그리고 동생은 3학년때 엄마께서 우리 둘을 태권도를 시켰다.

우리가 품띠를 허리에 둘리게 되었을 때쯤에 태권도에서 공개 심사가 있었고 엄마는 우리를 태권도 학원을 보낸뒤 처음으로 태권도에 오셔서 관람하셨다.

한달 뒤쯤인가?

엄마는 내가 태권도 하는게 마치 탈춤추는 거 같다며 나는 태권도를 그만두라고 하셨다 -_-;;;

그러시고는 나는 바이올린 학원에 보내셨고 동생은 계속 태권도를 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같이 하던 동생이, 그때부터 나와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던거 같다. 나는 조금씩 살이 붙었고 동생은 조금씩 잔근육들을 온몸에 나타내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어린 나이에 2년차이는 극복하기는 힘들었나보다. 어렸을 때부터 나한테 엄청 맞고 지난 놈이 아무리 발차기를 잘하고 격파를 하더라도 나한테 두둘겨 맞는거는 여전했다.

그러고 보면 내동생은 나한테 참 많이 맞았다 ㅋㅋ 뭐 다른 집은 사실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 둘은 정말 치고 받고 많이 싸웠다. 가만 생각해보면… 싸운게 아니고 그냥 나한테 맞은 거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허허…

나이가 슬슬 지나 고등학교? 때부터 서로 육적으로 충돌은 멈춘거 같았다. 뭐 서로 욕도 하고 쓸떼없이 먹는거 때문에 싸우기는 했어도 어렸을 때처럼 죽방날리고 날라차기 하고 이런식은 싸움은 이때부터쯤 멈춘것 같다.

그렇게 나이를 먹고 나는 21살 정도가 되었고 동생은 19살쯤 되었을 때였다.

우리 집에 쥐가 많아서 쥐덧을 놓고는 했는데 이 쥐덧들이 쥐를 죽이는 쥐덧이 아니라 끈끈이 타입이었다. 그래서 쥐가 잡히면 그게 참 어떻게 해야하는지 난감했다. 나는 뭐 주로 쥐가 잡히면 봉투에 넣고 산쥐를 그냥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 위로 뭐 시간이 지나면서 쓰레기가 올라가면 알아서 죽겠지? 라는 바램으로 말이다. 쥐놈들때매 참 고생도 많이 했지만 이놈들도 생명이란 생각에 죽이기는 힘들더라… 어떻게 죽이는 지도 모르고 말이다.

근데 어느 날, 자다가 쥐가 쮝쮝대는 소리에 잠이 깼다. 부엌에 갔다니 쥐한마리가 동료쥐들에게 살려달라고 소리지르는지 애태롭게 쮝쮝 거리고 있었다… 에이고 불쌍한것...하며 나는 그 쥐를 봉투에 넣었는데 때마침 동생이 방에서 나왔다.

그러고는 쥐가 잡힌 봉투를 보더니 우선 욕을 하더라… 우리 집이 쥐들 때문에 고생을 좀 해서 이점까지는 이해한다. 그러더니 나보고 봉투를 달라고 하더라…


“형, 내가 이 봉투로 뭘 할려는지 알아?”




정말 소름돋게 싸이코같이 입 한꼬리가 올라간채로 나한테 물었다.


“잔인한놈… 너 설마…”

“설마 뭐? 내가 뭐 할지 알아?”

“너 그 봉투 계속 돌려서 쥐 어지럽게 할라고 하냐?”


내가 말했지만 난 이것도 상당히 잔인하게 들렸다. 누가 나를 봉투에 넣고 계속 돌린다고 생각해봐라… 근데 동생이 생각한건 이게 아니였다.

“형 잘봐”


이 세글자를 던지고는 예는 봉투를 돌리기 시작했다. 한 두번돌리더니…




봉투를 벽에다가 냅다 치는게 아닌가…
봉투 안쪽 면에는 피가 튀겼다…


“이게 한번으로는 절대 안되”




빡, 빡, 빡…



이렇게 한 3-4번은 친거 같다… 그러고는…



“아 이건 피가 튀겨서 참 문제야.. 쯧쯧.”



이러고서는 봉투를 잘 묶은뒤 쓰레기통에 버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 후로 두번다시 동생한테 안까불었다...


Monday, January 13, 2014

시간

무언가 하나가 잘못되어도      
아무일 없다는듯이 지나가는 시간은
원래 그렇게 만들어 진것이 아닐까?          
 
나 말고는 그 누구도 안 멈추는 이 세상은
원래 그렇게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시간이 흘러가는게

그게 정상이 아닐까

Thursday, January 9, 2014

방향

오른쪽으로 휘고 싶어하는 것을
왼쪽으로 힘으로 꺽다보니
방향을 못잡고
휘청대는 사람이 되었다.

돈은 과연 행복에 얼마나 비중을 차지할까?
싫어하는 것을 평생 해야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자신의 꿈을 시작도 못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부모로써
조금더 귀 길울여주고
조금더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알게해주는 교육
그런 교육이 좋은 교육이 아닐까

Saturday, December 28, 2013

링거에 위험성

http://www.heykorean.com/HK_News/view.asp?section=3&aid=97239

http://www.nytimes.com/2013/12/27/nyregion/infection-resulting-in-amputation-raises-questions-about-asian-immigrants-iv-use.html?src=me&_r=0

한국말로 흔히 불리는 '링거'란 단어는 사실 의학에서는 intravenous 라고 불리웁니다. 흔히 I.V 라고 불리우는 이 단어를 사실 두개의 단어가 합쳐진 거인데요, 그 두 단어는 바로

Intra
Venous

즉 위, 장들을 거치지 않고 바로 Vein (정맥)으로 투입된다고 하여서 Intravenous 란 단어를 얻게되었습니다.

한국 방송을 보면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링거 투혼'을 했다는 말들을 흔히들 보는데요, 전체적으로 이건 사회에 안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I.V. therapy 는 사실 입으로 먹는 약들보다는 훨신 흡수력이 좋고 onset 또 빠릅니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성도 높아서 사실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병원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흔하지는 않지만 사지를 짤라야 하는 경우도 충분히 생길수 있으니 여러분 모두 생명이 위급하지않으시면 조금 안전한 길로 가시길 바랍니다 ^^

Sunday, December 22, 2013

눈물샘 - 우는 방법







Lacrimal gland 은 흔히들 사람들이 말하는 눈물샘이다.

눈 맨 끝자락, 귀쪽에 가까운 자리에 위치하여서 이것이 눈물을 만들기 시작하면 눈물은 눈을 가로질러 코쪽으로 향한다.

코위쪽에서 부터 nasolacrimal duct 이란 통로를 따라내려와 사실 눈쪽 보다는 코쪽으로 먼저 향한다.

그렇게 코쪽으로 향한 눈물들은 점점 그 통로를 채우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그 통로에 더 이상에 눈물이 들어갈수 없을때,

한마디로 눈물이 넘치도록 찼을때,

그 때서야 우리 눈에선 눈물이 한방울씩 뚝... 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방울에 눈물에 떨어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눈물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사람들이 눈물을 흘릴 때 주로 콧물을 흘리는 것이다)

Saturday, December 21, 2013

펑펑

어머니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미국 처음왔을 때 미국에 사는 친척때문에 얼떨결에 알게된 지인인데 미국처음왔을때 몇번 만나고 몇년만에 연락이 온것이었다.

몇번 만난적도 없었고, 잘 알지도 못했지만 그 지인이라는 분은 성격이 참 좋으신 분 같았다.

왜 그런 얼굴 있지 않은가?

하두 많은 웃음때문에 얼굴에 웃는 모습을 따라 주름이 진 사람.

그분은 그러신 분이셨다.

항상 웃고 계셨고, 어떤 말에든지 격렬히 동의하셔서 항상 누구에게나 선심을 사시는 그러신 분이셨다.

아마 그분이 더 좋게 보였던 이유는 아마 그분의 성함이 나의 어머니와 성함과 같으셔서 아닐까도 싶다.



전화를 받으신 엄마는 손을 입으로 가져가셨다.

얼굴은 귀신이라도 본듯 얼어붙으셔있으셨다

전화 내용은 이러하였다.

그 분, 즉 우리 어머니와 이름이 같으신 분의 남편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머리숫이 좀 없으셨지만 그래도 나이는 젊디 젊은 40 대였고, 이제막 급 성장하는 12살 아들을 둔 그가 아침운동을 갔다가 뺑소니를 당해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몇년만에 전화를 하셨는데, 별로 좋지 않은 소식을 가지고 전화하셧다. 장례식은 어디서 언제라며 추가 정보를 말해주셨고 엄마는 전화를 끊으시고 '세상에' 라는 말을 반복하시며 방금 받은 전화내용을 내게 말해주셨다.


시간이 흘러 장례식 날이 되었다.

아빠는 일이 있어서 못오셨고 내가 운전하여서 엄마와 나, 이렇게 둘이 장례식에 참석하였다.

그쪽 가족 모두가 예수를 믿는 사람이어서 교회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고 찬양을 불렀다. 그러다가 후반쯤에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시간이 왔다. 관을 시작으로 쭉 길게 줄을 섰고, 흐르는 찬송가에 맞춰서 한명씩 고인에 얼굴을 보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우리 엄마 차례가 되었을 쯤, 어떤 여자가 너무나 큰 울음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세상에나, 미망인이나, 그쪽 가족이나 그렇게 크게 우는 사람이 없었는데, 그 여자는 고인과 무슨 관계였는지 폭포같은 눈물들이 얼굴 화장을 전부다 번지고 있었다.

그렇게 고인에게 인사를 하고, 엄청나게 통곡하면서 우는 그 여자는 미망인과 껴안으면서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죽은 자기 남편을 위해서, 아니면 그 가족 전부를 위해서 울어주는 사람이 있다니,
아마 그건 미망인에겐 엄청나게 큰 위안이 아니였나 싶다.

그렇게 그 여자에 통곡을 계속되었다.

가족도 아닌 그 여자는 계속 울었고,

장례식을 떠날 때쯤이야, 간신이 흘러 넘치는 눈물을 누군가에게 얻은 손수건으로 치우치며 그 곳을 떠나였다.

돌아오는 길도 역시 내가 운전하였다.

엄마는 조수석에 앉아 계셧다.

번진 화장을 고치고 있는 엄마에게 왜 그렇게 크게 오랬동안 울었냐고 물어봤다.

잘 알지도 못하는 가족이고, 하다못해 몇면만에 만난 사람들인데... 왜그렇게 크게 울었어?


그랬더니 엄마는 모른덴다.
그냥 눈물이 자기도 모르게 계속 흘러나왔다고 한다.

엄마는 무엇이 그렇게 슬프셨을까?